교육 관련 생각과 정보/민주시민교육

[실천] 나의 민주시민교육 분투기

주라리312 2021. 4. 30. 23:17

수업을 잘 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대안학교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슨 과목 가르치세요?"이다. 이 질문은 대답하기 상당히 곤란하다. 이른바 '대안적인인 교육'의 핵심은 시간표에 나와 있는 활동(과목)이기 보다는 아이들 한 명 한명 맞춤형 교육을 하는 것이다. 활동(과목)을 통해 배우는 '형식적 교육과정'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자극들을 배움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아이들은 수업보다 점심시간에 친구와 싸운일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많이 배운다) 그러다 보니 어떤해는 담임역할만 하고 수업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질문하신 분이 대안교육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대안적인 교육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래서 교사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 드린다. 하지만 그냥 의례적으로 질문하신 거라면 그냥 이해하기 쉽도록 '역사' 혹은 '사회' 수업을 한다고 말씀드린다. (대안적인 교육의 핵심과 교사에 역할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2015년부터 서울시교육청 오디세이학교의 하나의 캠퍼스를 민들레가 운영하게 되면서 공교육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게 됐다. 선생님들의 수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랐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잘 하는 것은 내가 애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수업을 잘 하는 것에 대해 욕심을 내지 않았었다.

 

분투1. 2013년~2015년 : 교사에게도 도전과 시행착오가 필요해

  대학에서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가까스로 졸업을 한 뒤 민들레에서 일하게 되었다. 교육학이나 전공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안다고 수업을 했나 싶다. 그래도 민들레에서 나에게 수업을 맡긴 이유를 지금 해석해 보자면, 20대 중반까지의 나의 경험과 실천들이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지금 보면 정말 엄청난 도전을 했었다. 역사, 문화인류학, 시사, 탐방, 정치사회경제 혼합, 과학 수업까지... 어느 한 분야도 수업강사를 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는데... 무식해서 용감했다. 아이들하고 같이 배운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수업에 대한 평가를 해보면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주제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흥미를 유발할 수는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기획했던 것을 충분히 구현해 낼 만큼 수업강사로서의 지식이나 스킬이 부족했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있었던 아이들(사실 이런 친구들은 뭘 해도 열심히 한다)은 열심히 했고, 무기력한 아이들까지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부족한 수업이었다.

 

2013년

2013년 1학기 수업
2013년 2학기 수업

• 2014년

 

• 2015년

 

민주시민교육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다

  2014년 세월호 사건,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마음을 먹게 됐고 실제로 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잘못된 정권을 몰아냈다. 이 사건들은 교육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2016년 민주시민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생겨나고 2017년에 서울시에 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가 생겨났다. 비슷한 시기, 민들레에도 시민학 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게 됐다. (민주시민교육은 특정 과목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안과 밖에 있는 모든 시간을 통해 어린이·청소년들이 시민성을 가질 수 있도록 지향해야 하는 교육의 최종 목표이지만 특별히 내용적으로도 민주시민에 대해 다루는 수업을 개설하게 됐다.)

 

분투2. 2017년~2018년 : 민주시민교육이 뭐지? 나도 모르겠다

  2017년부터 민들레에서도 '시민학'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시민을 주제로 하는 수업을 개설하게 되었다. 강사로 나와 다른 강사분 몇 분과 함께 시작했다. 수업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다행히 경기도교육청에서 나온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의 존재를 알게 됐다.

 

<민주시민 교과서 사진>

<교과서 머리말 중>

집필진은 다음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 권리를 알아봅니다.

둘째, 우리가 시민으로 살기 위해 사회 제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교과서 덕분에 수업의 방향을 '기본 권리'와 '사회 제도'를 공부하는 것으로 정할 수 있었다. 다른 수업이나 활동에서도 인권에 대해서 다룰 때가 많기 때문에 사회 제도를 이해하는 것으로 내용을 정했고, <민중의 세계사>책을 활용하여 제도사 수업을 했다. 결과적으로 너무 욕심을 부린 기획이었다. 제도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게 매우 많은데 그것을 열시간 남짓으로 전달하려고 하니 강의식이 될 수밖에 없었고 내용도 부실했다.

 

<시민의교양 책 사진>

  시행착오를 딛고 찾게된 책이 채사장의 <시민의 교양> 책이었다. 세상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 7가지 주제로 맥락을 만든 게 눈에 띄었다. 자칫하면 딱딱해 질 수 있는 교양서적이지만, 등장인물이 대화하는 식으로 서술하여 큰 스토리를 이끄는 방식도 신선하다. 각종 통계자료와 사례가 많이 담겨 있어서 수업에 활용하기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훌륭한 점은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간결하게 세상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기획과 디자인의 완성은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 이 책이 정말 그렇다.

 

  책을 여러번 읽어 내용은 잘 이해하였으나, 아는 것과 전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수업 역시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었으나 열정이 없는 아이들의 마음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2018년에도 새로운 도전은 계속됐다. 과학사와 삶첵(산책) 수업을 새롭게 진행해 보았고 나름 의미 있었다. 여러 가지 도전에 대한 정리는 나중에 다시 해야겠다.

 

• 2017년

• 2018년

 

분투3. 2019년~2020년 :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하다.

  2019년 시민학 수업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 해에는 특히 세상에 대한 관심 보다는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시민의 교양을 교재 삼아 수업을 한 지 3년째 돼서 내용이나 전달 스킬이 이전보다 좋아졌음에도, 세상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별로 없는 아이들이 많아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세상에 대해 아직 궁금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왜 알아야 하는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업이 필요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미도 있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먼저 그동안의 수업에 대한 평가를 열심히 해봤다. 돌아보니, 아무리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 하더라도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라는 주제는 고민을 처음 해 보는 아이들에게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의 문제로 가져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열심히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시키긴 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수업에 흥미를 잃어갔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배경지식이 없이도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방법이 인권 영화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민들레 책장에 있던 <별별 차별 - 영화 속 인권 이야기>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인권에 관련된 중요한 주제들과 관련된 단편 영화들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자연스럽게 책에서 소개한 인권 영화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 인권에 대한 영상 콘텐츠를 찾으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하지만 교육용으로 쓰기에 좋은 콘텐츠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일단 재미가 있으면서 주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너무 길지 않아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러 영화감독들이 힘을 합쳐 만든 인권 영화는 딱 내가 찾는 콘텐츠였다. 만든지 오래 되기는 했지만(2003년~2013년) 퀄리티는 훌륭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DVD를 신청해서 받고 모든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수업을 기획했고 그 결과 '시민학 - 영화 속 인권 이야기' 수업을 개설했다.

 

 

  민들레는 1학기를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1학기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를 열심히 한다. 아무래도 새로운 수업에 대한 수요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기존 수업들은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시민학은 나를 좋아해 주는 학생 4명의 선택으로 가까스로 유지됐다. 원래 5명 미만은 폐강인데 4명이 수업을 하길 원해서 지속하게 됐다.(세상일에 전혀 관심 없던 4명이 시민학 수업을 원하는 상황이라 모든 사람들이 놀라 수업을 유지하는 것에 동의했다)

  시민의 교양에서 영화 속 인권 이야기로 수업 기획을 바꾸고 나니 아이들의 참여가 180도 달라졌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이 하겠다고 '선택'을 했기 때문이지만) 특정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난이도가 높았지만, 영화의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수업은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됐지만, 자연스럽게 인권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인권 이야기 수업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만 청소년들이 제도에 대한 공부 또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20년에는 1학기에는 시민의 교양을 하고 2학기에는 영화 속 인권 이야기를 진행하기로 했다. 제도에 대한 공부가 덜 재밌고 어렵더라도, 아이들이 좀 더 긴장하고 열심히 하는 1학기에 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공간민들레(학교 밖 청소년)에서 한 반, 오디세이민들레(공교육 청소년)에서 한 반을 같은 내용으로 진행했는데 2학기에 시민학 수업은 공간민들레에서는 없어지게 됐고 오디세이민들레에서는 유지하게 됐다. 상대적으로 강의에 좀 더 익숙한 공교육 청소년들에게는 괜찮았고, 강의 방식이 힘든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았다. (더 깊은 분석은 다음 기회에 싣기로 한다)

  2020년에는 '서울특별시 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의 '시민참여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원래는 성북구 지역의 청소년들도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와 탐방을 혼합한 7회차의 단기 프로그램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모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수업을 듣는 공간민들레, 오디세이민들레 청소년들을 모두 모아 진행했다. 그동안 해 왔던 수업과는 다른 새로운 맥락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다지 기억에 남는 활동은 아니었던 것 같다. 1회성의 특강과 탐방 정도로 여겨졌다. 나중에 지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마을교육을 하게 될 때를 위한 연습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 2019년

• 2020년


 

분투는 현재진행중. 2021년~ : 민주시민교육을 잘 하고 싶어지다.

  2017년 민주시민교육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로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게 됐다. 지금은 민주시민교육을 나의 큰 특기로 삼고 싶다. 이런 마음이 생기니 공부하고 싶어졌다. 전국사회교사모임의 선생님들이 쓰신 여러 가지 책을 보고 공부하고 있다.

  올 해 다시 두 개의 시민학 수업을 하고 있다. 15~18세가 섞여 있는 공간민들레반과 고1 학생들이 모인 오디세이민들레반이다. 올 해는 영화 속 인권 이야기를 기본으로, 영화 감상과 토론에 그치는 것이 아닌 1주의 추가적인 강의와 활동을 통해 내용을 채우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2학기 때 시민학이 살아 남는다면, 제도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와 평가는 수업을 마치고 하겠다.

 

 

민주시민교육 분투기를 마치며...

  이 글을 대안적인 교육을 비판적으로 보는 분들이나 교육을 지식을 가르치는 관점에서 보면 하실 말씀이 엄청 많을 것 같다. 강사의 자격도 부족하고 수업의 목표와 내용적인 측면에서 교육적이라고 검증되지 않은 활동을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물어보실지도 모르겠다. 오디세이학교가 처음 시작하고 2년 정도(2015~2016년)은 비슷한 맥락에서 검증되지 않은 교육과정을 청소년에게 교육하는 것은 애들을 가지고 실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었다.

 

  당시에 나라면 대답하기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수업은 무엇일까?"

  이전 글 (중고등학교에 가장 필요한 변화 두 가지) 에서 썼듯이 자존감을 살릴 수 있는 수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 차이에 상관 없이 많은 학생들이 참여를 통해 성장의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좋은 수업은 무엇일까?"

  참여를 많이 할 수 있는 수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만족해 하는 수업은 어떤 수업일까?"

  자기가 말을 많이 한 수업이다. 이는 어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이 글을 보고 부끄러워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생각은 이렇다. 계속해서 시도해 보고 공부해 나갈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