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게이머들이 기다린 디아블로4가 6월 6일 정식 발매했다. 더 비싼 디럭스나 얼티밋 에디션을 구매한 사람은 6월 2일부터 시작했다. 나 또한 6월 2일부터 시작해 어제(6일)까지 30시간 정도 열심히 달렸다. 디아블로3가 나오고 11년 만의 차기작이기에 수많은 게이머들이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11년 사이에 2탄의 리마스터인 '디아블로2 : 레저렉션'(2021)과 외전 격인 '디아블로 : 이모탈'(2022)이 있긴 했지만 후속작에 거는 기대는 다르다. 디아블로4는 베타테스트 기간부터 현재까지 호평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엔드 콘텐츠까지 충분히 플레이가 된 이후에야 종합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나 출발이 아주 좋다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후속작을 발매하는 IP는 여럿이 있지만 핵 앤 슬래시라는 하나의 하위 장르를 탄생시키고 현재까지 계승발전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디아블로는 특별하다. 23년 동안 2,3,4탄을 열심히 플레이했고 하고 있는 게이머로서, 기존 디아블로 시리즈의 특징과 변화 과정을 짚어보면서 이번 신작의 매력과 우려지점을 정리해 보겠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공통적인 특징
디아블로 시리즈는 액션RPG 장르를 새롭게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시리즈끼리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더 좋았거나 아쉬운 점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꼽을 수 있는 특징은 이렇다.
첫째. 어둡고 긴장감 넘치는 세계관과 분위기다. 디아블로1을 기억하는 게이머들은 1탄이 시리즈 중 최고였다고 꼽는다. 1,2탄을 경험한 올드 게이머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밝아진 3탄에 대해서 아쉽다는 평가를 한다. 이번 4탄에서는 디아블로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게 중론이다.
둘째. 스피디하고 타격감 좋은 전투다. 시리즈의 핵심 재미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전투 빼고 모든 게 완벽한 액션RPG와 전투만 완벽한 액션RPG, 둘 중 밸런스 게임을 한다면 대부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액션RPG 장르에 게이머들이 가장 기대를 하는 점은 전투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게이머들의 이런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셋째. 파밍게임이란 용어를 만들어 낸 성장게임의 대명사이다. 디아블로 시리즈가 나오기 전부터 RPG장르는 존재했다.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업그레이드 해서 내 캐릭터를 강하게 만드는 재미는 RPG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RPG와 디아블로 시리즈의 차이점을 만들어 내는 것은 스피디한 전투에 있다. 수많은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통쾌한 전투가 아이템 파밍이라는 노가다(반복 사냥)을 가능케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디아블로 시리즈의 옵션과 수치를 도입한 아이템 시스템도 한몫했다. 지금이야 흔해서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시스템이지만, 디아블로 시리즈가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시대변화에 따른 디아블로 시리즈의 변화
1997년 등장한 디아블로1은 지금의 디아블로 시리즈를 있게 한 작품이다. RPG가 아니라 호러 게임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관과 분위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50만 장 이상 판매라는 큰 흥행 이후, 3년 반 만에 차기작 2탄이 나오게 된다.
90년대말 2000년 초반은 블리자드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디아블로1과 스타크래프트1의 큰 흥행은 블리자드를 세계 최고의 게임사로 만들었다. 그러던 중에 나온 디아블로2는 블리자드의 실력을 다시 확인한 작품이었다. 전작의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발전한 그래픽과 UI, 쉬운 조작으로 할 수 있는 통쾌한 전투는 단순하다는 비판을 뛰어넘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게다가 2000년부터 피시방이 엄청나게 많이 생기고 있었다. 블리자드는 이미 스타크래프트로 피시방을 점유하고 있었기에 디아블로2를 추가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피시방 카운터 뒤편에는 디아블로2 패키지 수십 개가 놓이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2~3년 혹은 그 이상까지도 디아블로2는 수많은 마니아들을 만들었다.
2012년, 12년 만에 디아블로 신작인 디아블로3가 출시하게 된다. 2탄의 대성공으로, 3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엄청났다.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을 만들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기존의 팬들이 좋아했던 점을 잘 계승하면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요소들이 적절하게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블리자드가 고려해야 하는 점은 더 있었다. 2012년에는 이미 수많은 재밌는 게임들이 출시되고 있었고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가 급부상한 시기였다. 딱히 대체할만한 게임이 없었던 2000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12년이 지난 디아블로3의 선택은 전작의 계승보다는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더 빠르고 화려하게 전투를 만들고 새로운 시스템을 대거 도입했다. 온전히 도입이 됐어도 쉽지 않았을 텐데 여러 가지 악재가 발생했다. 잦은 서버 다운과 해킹문제였다. 게임을 시작한 사람은 정말 많았지만 지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똥3, 수면제, 폐지 게임 등 여러 가지 오명을 남기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낮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디아블로3는 누적 판매량 6,500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긴다. 이는 역대 게임 중 마인크래프트(1억 장 이상)를 제외하고 2등이다. 디아블로2가 누적 750만 장 팔린 것과 비교해 보면(우리나라의 경우는 구매는 안 했어도 PC방에서 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PC와 콘솔의 보급이 늘어난 덕은 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2022년 '디아블로2 : 레저렉션'이 나오면서 20년 만에 다시 한번 2탄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옛날 그 시절만큼 재밌지 않았다. 내 나이가 많아지는 등 게임 외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2000년에는 장르를 뛰어넘는 압도적으로 재밌는 게임이었지만 2022년에는 '디아블로2 : 레저렉션'은 재밌는 액션RPG게임 정도였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재밌었던 다양한 게임의 경험이 쌓였기에, 2022년에 하는 디아블로2는 엔드콘텐츠가 부실한 게임으로 느껴졌다. 뭔가 플러스알파가 필요해서 하드코어 모드를 도전했었다.
2023년식 디아블로의 성공적 귀환
아직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디아블로4는 11년이라는 시리즈 공백을 넘어서서 연착륙하고 있는 듯하다. 출시 첫날에만 370만 장 이상이 팔려 블리자드 게임 중 출시일에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 됐다. 개인적으로 이번 신작 출시하면서 놀랐던 점은 서버 다운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잘한 로그인 이슈와 멈춤 현상이 있었으나 다른 시리즈 출시 초반에 비하면 굉장히 안정적이다. 온라인 게임의 특징은 패치를 통해 게이머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시스템을 수정·보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출시 직후에는 좋지 않았던 게임도 몇 번의 패치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물며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는 디아블로4이기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향후 패치와 확장팩 출시를 통해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것이다.
디아블로4는 2023년의 게임 트렌드를 전략적으로 잘 반영했다고 느낀다. 그 이유로 첫째는 가성비를 꼽을 수 있다. 일반판 84,500원만 보면 꽤 비싼 금액이지만, 베타테스트를 통해 이미 어마어마한 볼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디아블로 시리즈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수백 시간도 가능한 게임이기에 84,500원이 오히려 가성비 좋은 가격으로 느껴진다. 과금도 P2W(Pay to win)요소 없이 꾸미기만 있고, 전설 이상의 아이템은 계정 귀속으로 해놨기에 현질을 해서 강해지기는 매우 제한적이다. 현질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패키지 구매 이후에 특별히 돈 들어갈 게 없는 구조다.
둘째는 편리함이다. 포탈, 아이템 보관, 스킬을 찍는 방법과 초기화 등 UI가 정말 편하다. (말을 좀 늦게 탈 수 있다는 점만 빼고) 아이템 필터와 아이템 제작(크레프팅)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하지만 이런 것은 필요하면 추후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셋째는 자유도다. 시리즈 최초의 오픈월드라고 해서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 정말 확 달라졌다. 메인스토리 진행은 선형적이지만, 지역을 이동하고 어떤 퀘스트를 진행할지 게이머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레벨 스케일링을 도입해서다. 어느 지역에 가든지 나의 레벨에 맞춰 몬스터의 레벨이 조정되기에 자유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다.
그야말로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디아블로2 할 때는 핸드폰도 없었는데, 디아블로3할 때는 스마트폰이 있었다. 지금은 폰, 태블릿, 와치까지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것들이 가능해진다. 편리하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이면 충분했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는데, 한 번 생기고 나니깐 없으면 불편하다. 기기는 점점 더 스마트해지지만 나는 점점 단순해지는 것 같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것을 보고, 평점과 인기를 기준으로 정렬해서 선택한다. 시대는 계속 변하는 것에 주목한다. 몇 년 전에는 4차 산업혁명, 코딩, 블록체인, 메타버스를 귀따갑게 들어오다가 최근에는 AI, ChatGPT, 데이터분석 등이 들려온다. 학생이든 취준생이든 직장인이든 시대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린다.
허겁지겁 따라가다 보니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였는지 잘 하는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선택을 돌아본다. 상황에 따라 이것저것 관련 없는 것들을 해왔다. 하나의 선택만 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내가 해 온 선택의 맥락을 봐야 한다. 어떤 가치를 추구했는지, 아무리 힘들어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변화하는 것과 더불어 변하지 않는 것도 봐야 하는 이유다.
디아블로4는 신상품이다. 액션RPG의 2023년 버전이다. 게이머들이 원하는 최신 RPG 트렌드를 잘 반영한 것 같다. 편리하고 자유도도 높고 가성비까지 좋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어두운 분위기와 타격감 넘치는 전투 또한 재현해 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5일 동안 30시간을 할 정도로 열심히 달렸다. 게임 자체는 신선하다. 근데 뭐 하나가 빠진 것 같다. 편리해진 만큼 자유도가 높아진 만큼 변화에 치중하다 보니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놓친 것 같다. 그것은 성장하면서 강해지면서 오는 성취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레벨스케일링 때문에 내가 강해지는 것을 체감하기 어렵다. 엔드콘텐츠 정도는 패치를 통해 레벨스케일링이 없게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게임의 본질적은 요소이기에 이것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게이머들에게는 '성장'의 대명사였다. 변화를 쫓다가 변하지 않는 핵심을 놓친 것 같은 허전함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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